방구석 사색가 C Vil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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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팔로워로써 리더를 선택하는 기준 (from. 지도자 본색)

C빌런 2022. 5. 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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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문에 거리가 많이 시끄럽다. 운동하러 나갈 때마다 거리에서 서로 경쟁하듯이 쏟아내는 중독적인 선거송을 듣다 보면 저 사람을 왜 뽑아야 할까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다. 정당? 공약? 성품? 아니면 이미 머릿속에 들어찬 선거 노래?

 

  정당 보고 뽑는 것은 생각이 없다는 반증이기에 하기 싫고, 공약을 보려면 실현성과 공공의 이익에 대해 분석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시간 보내기가 너무 아깝다(민주시민으로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반성한다). 성품? 난 저 사람을 모른다. 그렇다면 친숙한 노래가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아직도 자유의 책임을 지기 어려운 초짜시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지난번에 yes24를 통해 사두었던 '지도자 본색'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와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역사책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소개하는 8명의 고대 로마 지도자들의 성장배경과 정치상을 중심으로 '우리가 지도자를 볼 때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하는가'에 대해 풀어내는 설명이 흥미로웠다. 


「오직 내가 말하는 대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

  그중 한 가지의 지도자 본색이 기억에 남는다. 모든 사람들은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인생을 살면서 자신만의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각자가 가진 신념은 상반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신념은 욕망, 욕심, 이익이라는 말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리고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자신이 곧 '정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확증 편향', '동기에 의한 추론'같은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가지게 된 심리기제에서 기인한 생각이기에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정의'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타인의 '피'를 봐서라도 쟁취해 내야만 한다. 이런 것들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성공하면 '혁명'이라고 부르고 실패하면 '폭동'이라고 부른다. 

 

  '개혁'은 혁명보다는 건전하게 일어나는 변화이지만, 이 과정 역시 이익집단들 간에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대부분의 과정에서 '피'를 보게 되는 결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었다. 

 

  공화정 시대의 로마는 국가 운영을 맡는 귀족 중심의 '원로원'과 대다수 국민들을 대변하기 위한 '민회'라는 집단이 있었다. '원로원'의 권위는 로마가 왕정으로 건국되었던 시기부터 존재했기에 대단했다. 국가의 중대 지사와 국민들을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했던 '원로원'은 여느 집단이 그렇듯이 세월이 흐르면서 귀족만의 이익과 재산을 보호하고 증식시키기 위한 권력기관이 되었다. 

 

  '그라쿠스 형제'는 그런 공화정의 원로원을 비판하며, 몰락하는 평민 자영농들을 구제하기 위한 개혁안을 제시하는 등 민생을 회복하기 위한 구원자로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런 개혁은 대다수 귀족들의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라쿠스 형제는 원로원의 권위를 무시하고 협조를 구하지 않는 채 개혁안을 집행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갈등이 커지면서 결국 그라쿠스 형제의 죽음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극단적인 생각은 오직 갈등과 파멸뿐」

  대중을 위해 나섰던 '그라쿠스 형제'라는 지도자들은 '공익의 실현'이라는 목표는 매우 이상적이었다. 그러나, 개혁은 반드시 '반개혁'의 거센 역풍을 맞게 된다. 로마라는 국가는 아무리 부패하더라도 '원로원'에 의해서 국정운영이 이루어지는 국가였고, 나라를 다시 세우지 않는 이상 '원로원'과의 협상은 필수였다. 

 

  기득권층인 '원로원'의 행태는 '공익'의 측면에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개혁의 시작을 위해 '그라쿠스 형제' 또한 신중하게 상대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면서 원하는 것을 이끌어 내는 협상의 자세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라쿠스 형제는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더 강경한 개혁을 추구했고 양보와 타협의 공화정 정신이 무너지면서 시민들 간에 유혈사태가 발생하며 그라쿠스 형제는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정치적 고집과 불통의 문제이다. 예를 '그라쿠스 형제 개혁'에 들었기에, 공익을 위해 노력한 그라쿠스 형제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각자의 사회에서 기득권층이기도 하고, 피 기득권층 이기도 하다. 기득권층과 싸워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기득권층이 되었을 때, 또 다른 누군가가 당신에게 달려든다면 여전히 자신을 '정의'라고만 외치면서 그들을 억압할 것인가? 

 

  극단적으로 자신의 정의에 빠진 사람들이 지도자가 된다면 혼란을 일으키고 피를 부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공익을 위해 상대의 이익과 가늠하며 협상을 할 줄 아는 전략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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