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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르상티망'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통한 대한민국 사회 뇌피셜 풀이 본문

잡생각

나. '르상티망'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통한 대한민국 사회 뇌피셜 풀이

C빌런 2022. 5. 2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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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청 님의 추천한 책 중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 대한 책을 읽었다. 역시나.. 읽을수록 새로운 경험과 감정에 흥미를 느끼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읽은 내용 중 '두 가지'의 주제가 머릿속에서 버무려지고 있어서 글을 풀어본다.


「르상티망에 대하여」

  '르상티망' : '약한 입장의 사람이 강한 사람에게 느끼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

 

  쉽게 말해 우리의 시기심, 열등감 등을 포괄하는 고급 진 개념이다. 르상티망의 개념을 제시한 유명한 철학자 '니체'는 우리가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두 가지 경우를 얘기해 준다.

 

- '르상티망'을 불러일으키는 주체의 기준에 예속, 종속되는 형태

- '르상티망'의 원인이 되는 가치를 뒤집는 형태

 

  첫째의 대표적인 예로, '카푸어 족'을 들 수 있겠다. BMW, 벤츠, 아우디 등 고급 브랜드의 명품 차들은 남자들에게 있어 자신의 가진 '부', '권위', '남자의 매력'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 차를 보유한 차주들에 대한 '르상티망'을 이용해 많은 자동차 회사는 돈을 쓸어 담고 있으며, 실제로 이런 '르상티망'으로 인해 어느 정도 경제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차를 구매하여 자신의 '르상티망'을 해소하기도 한다. '명품시계', '명품 가방', '자이 아파트' 등 들 수 있는 예시는 너무나 많다.

  둘째의 경우, 자신이 '르상티망'을 이룰만한 능력이 부족하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 우리의 심리를 보호하기 위해 '르상티망'의 가치를 왜곡하거나 다른 것에 기대어 가치를 절하하는 것이다. 아까 들은 '명품 차'를 예시로 들어보자.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이 이루지 못한다면 이런 반응이 예상된다.

 

"야 BMW 있으면 뭐 하냐. 차 연비도 안 좋고 관리비도 엄청나고, 쯧쯧... 그 차 타고 다닌다고

자랑하는 놈들은 실제로 '카푸어'에 대가리 빈 놈들이야. 오히려 나는 지금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더 경제적이고 만족해"

 

  자신이 '르상티망'에 빠지지 않은 것인지 인지하는 것은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중요하다(이런 것도 메타인지라고 생각한다). '르상티망'에 잠식되면 우리는 '자신이 진정 원한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타인과 사회가 인정하고 대우하는 가치'를 혼동하게 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종속되는 위험에 빠진다(열심히 일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일상).

 

  그리고 '르상티망'이란 것은 대부분 지금의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것들이기에 노력하거나 도전하지 않고 간단히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전하지 않음'이다.

 

  '르상티망'에 빠져있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책에서 알려준 내용을 소개한다. 르상티망에 잠식되지 않았다면, 위의 BMW 상황에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응? 그냥 차가 굴러다니면 되지 뭐"

"응? BMW 안 타봐서 모르겠지만, 지금 타는 차도 좋아. 잘 굴러가"

 

무슨 차이가 느껴지는가?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다.


「자유에 대하여」

  나는 철학을 제대로 공부 안 해서 잘 모르지만, 철학 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유명한 '에히리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들어보신 분들이 있으실 것이다(3수 생활 때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귀에 따갑게 에히리 프롬 찬양론을 들었다). 책 제목인데, 사실 아직 한 번도 안 읽었고 별로 읽고 싶은 마음도 안 들어서 안 읽을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설명해 준 '자유'의 관점에 대한 설명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프롬은 엄청난 희생을 이루고 '자유'를 얻어낸 유럽의 시민들이 왜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 '공산주의'에 자발적으로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석했다.

 

  우리가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자유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군 전역을 하고 나니 더 피부에 와닿는다. 미래에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동안 소득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대로 안되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고민들을 토대로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야 할지. What고 How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내 스스로를 이끌고 간다. 이런 나날을 보내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끊임없는 생각에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의 걱정과 불안을 잡기 위해 '운동'을 하고, 내가 믿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 '독서'와 '글쓰기', 중기적인 '계획', 그리고 자기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프롬은 당시 소상인, 장인, 사무직 근로자들로 이루어진 하층 및 중산 계급층이 파시즘의 중심 지지세력이었음을 지적하며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왕정이 무너지고 갑작스러운 '자유'를 얻은 시민들은 갈피를 못 잡았다. 스스로가 책임을 질 준비가 안되었다. 아니, 책임을 진다는 것이 뭔지 몰랐다. 그동안은 '주는 밥', '주는 돈', '맡겨진 임무'만 행하면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하루하루 책임지는 무게와 고독함보다 이런 지속적인 고민을 없애줄 전체주의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프롬은 인간이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매사에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용기와 강인함을 지니고 자아를 철저하게 긍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르상티망에 빠진 사회」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사회(회사, 일터, 직장, 연예계 등)에서 앞서나가는 사람들에게 품은 '르상티망'은 우리를 그 사회에 종속되고 결속하게 만든다. 이런 종속과 결속이 '사회적 현실'을 유지하게 하는 힘 중 하나일 것이다. 마치 벤츠와 BMW의 판매량이 매년 늘어나는 것처럼. 또 어찌 보면 현명한 '르상티망'의 활용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과 같은 선상에 놓아주도록 노력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르상티망'은 선망하는 대상의 가치를 역전시킴으로써 자아를 보호한다. 잘나가는 사람들의 '못난 점', '실수', '정신없이 바쁜 삶' 등에 집중을 하여 '저렇게 살 바에야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라고 간단히 가치를 역전시킨다.

 

  이건 단순히 '정신 승리하는 놈들 찌질하네'하고 넘어가는 시각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나를 비롯해 인간의 대부분은 '르상티망'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우위를 통해 만족감과 행복을 얻기 때문이다. 그 생물학적인 증거가 '세로토닌' 수치이다.

 

  침팬지는 집단 내에서 우두머리인 수컷의 '세로토닌'수치는 높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가 정점에 있으매 '세로토닌'을 분비가 늘어나며 '우월감', '지배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다 우두머리 수컷이 노쇠해지고 힘이 약해져 무리의 정점을 젊은 수컷한테 빼앗기게 되면 '세로토닌'수치는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인간도 똑같이 '세로토닌' 호르몬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상대적 지위에 따라 우월감을 느끼기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르상티망'에 벗어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지하여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 때문에 이 문제는 중요해진다. '자본가'보다 '노동자'가 더 우월하다는 「공산당 선언」, 패전국의 빚더미에 앉은 독일을 '민족주의(게르만 우월주의)'를 내세워 배상을 무효화하고 독일을 강대국으로 만들겠다고 한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지지.

 

  자유를 얻은 중산층 및 하층의 시민들의 삶이 팍팍할 때, 부를 독점하던 '자본가'에 대한 '르상티망(질투, 분노)'과 그런 '자본가'들의 공장에서 사람들이 부품처럼 취급받으며 일하던 '산업 윤리'가 없는 시대적 상황이 더해져 '공산주의'의 탄생을 만들어냈다. 다들 알다시피 공산주의는 실패한 이념이다(지구 상에 진정한 공산주의는 없다 그건 진정한 유토피아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모든 산업기반과 경제가 무너진 독일이 막대한 배상금의 빚을 지게 되면서 독일의 국민들 삶은 나락까지 떨어져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히틀러는 이런 어려움에 처한 원인을 외부(1차 세계대전 승전국)로 화살을 돌리며 '르상티망(원한, 분노)'을 불러일으키고 국민들의 손으로 전체주의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탄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잘 설명해 줄 것이다.

 

  우리에게 아무리 '자유'가 주어진다고 한들 '르상티망'에 빠진 사회는 '자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명하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역사를 통해 보았다. 특히, 구성원 개개인에게 권력이 주어지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지금 우리는?」

  최근 대한민국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의 사회에서 우려되는 문제들이 있다. 10년 전부터 언급되던 스마트폰과 SNS 중독 문제이다.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SNS를 통해서 우리는 수백,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생활을 접한다. 그리고 그들 중 인플루언서, 인싸, 성공한 유튜버, 성공한 창업가 등 우리보다 뛰어난 많은 사람들을 정말 쉽게 만나게 된다.

 

  한두 명이 아니라 나보다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비교한다. 그리고 '세로토닌'의 분비를 낮추게 된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통해 더 '겸손'하게 되고 '성공'에 대한 의지를 다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르상티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런 종합적인 이론과 상황을 대한민국 사회에 대입해 생각해 보았다.

 

1. 대한민국의 성인뿐 아니라 초등학생까지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SNS 사용은 필수적이다.

    우리의 '세로토닌'수치에 영향을 주는 환경이 매우 잘 갖추어져 있다.

 

2. 대부분의 부동산을 가진 기성세대, 성공한 유튜버, 유명한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의 인스타.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르상티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

 

3. 근 10년간 최고의 직장으로 여겨지는 '공무원'에 대한 치열한 경쟁

 

  3가지 언급을 통해 내가 해몽한 사실을 나열하겠다. '페이스북'이라는 SNS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는 서서히 '르상티망'에 더 취약해졌다. 이것은 지금 자라나는 10대에서 더 심해질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어린 시절부터 SNS에 노출되어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2번과 3번이 엮어서 말하자면, 내가 속해있는 2030 세대는 '불평등'에 굉장히 민감(불편)하다. 어릴 때부터 주변 친구뿐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과 쉽게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극성적인 교육 열풍을 생각해 봤을 때, '학업'이라는 분야에서 '르상티망'의 달성자들은 1%(SKY 대학) 정도 될 것이다. 나머지는 '르상티망'을 달성하지 못했다.

 

  사실 SKY 대학에 못 가서 르상티망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과 '사회'의 기준에서 10대의 '성공가치'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르상티망'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2030 세대는 '르상티망'에 젖어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것을 보여주는 '사회적 현실'이 3번 '공무원'열풍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필자도 '군인 공무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풍토를 잘 안다. 기본적으로 공무원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는다. '도전'이 없고 '노력'이 없다. '책임'도 없다(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조직에 속해서 조직이 시키는 일만 잘하면 1 달마다 따박따박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미래의 생존 문제로 인해 고민하고 자아를 계발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르상티망'에 빠진 대부분은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을 기피한다. 그렇기에 '공무원'은 최적의 직업이다. 한 번의 어려운 시험만 통과하면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르상티망'에 빠진 사회일수록 올바른 판단을 하기 힘들다. 왜? 사회구성원들이 '자유'의 무게를 짊어질 정도로 스스로에 대해 탐구하고,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발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과 해석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대한민국은 '르상티망'에 빠진 사리분별 못하는 사회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아니다. 일단 우리나라 사람들은 극한 환경(전쟁, 기아 등)에 처해있지 않다. 군인 출신이 휴전 국가가 아니라고 말하니 불편해하실 거 같아 말해드리겠다. 우리가 휴전국가가 아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정서가 전쟁이 없는 시대에 사는 평화에 빠져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시대적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계발할 수 있는 여유로운 환경이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요즘에 유튜브나 SNS를 통해 무자본으로 창업하여 성공하거나(자청님), 인스타를 통한 '개인 브랜딩'을 성공시킨(앤드루님) 같은 많은 분들이 사회에 빈번하게 노출되면서 많은 젊은 세대들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거두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 예시로, 최근 뉴스를 통해 '기업'과 '공무원'을 퇴사하는 2030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들 수 있다. 나도 도전을 하기 위해 군을 나왔지만, 이런 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주변 2030 세대들이 소식이 '도전'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싶다.

 

  ① 생각이 가능한 환경의 구성, ② 젊은 세대의 '도전'과 '노력'은 대한민국 사회가 '자유'에 도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청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낙관적인 해석만 할 수 없다. 지금의 2030 세대보다 더 밑의 10대와 그 밑의 세대들은 2030 세대보다도 이른 시기에 스마트폰과 SNS에 노출이 되었다.

 

그  게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상할 수가 없다. 이미 스웨덴에서는 SNS의 폐해로 생긴 '우울증'때문에 '항우울제'를 처방받는 10대들도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인스타브레인 저자이고 스웨덴의 뇌과학자이자 의사의 말). 국내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심각성이 크게 대두되지 않는 모양이다. 심각한데 인지를 못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극심한 '르상티망'에 빠지게 된다면 '자유'를 막 찾아가던 사회가 고꾸라 질 수도 있지는 않을까? 노파심 가득한 걱정을 해본다.


이 글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인스타브레인', '간다효 TV(YouTube), '드로우앤드류(YouTube), '자청님 블로그의 글'을 보고 만들어진 생각들을 종합해 보고 정리하고자 적은 글입니다. 심심하면 수정이 될 수도 있으며, 재미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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