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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사. '사람은 고쳐서 쓸 수 있는가?'에 대하여

C빌런 2022. 11. 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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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많이 들어본 말 중 하나가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생도 시절 선배로서 후배를 교육하고 장교로서 아래에 있는 인원들을 관리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 동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험도 이 주장을 확신하기에 부족했다.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겼을 때, 역할을 잘 수행하면 잘하는구나라고 칭찬하고 역량이 부족해 해내지 못하면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성격 탓에 진심으로 누군가를 바꾸겠다고 작정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장교의 자질이 부족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바뀔수 있는가?」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람을 고쳐서 쓸 수 있는가?'를 탐구하기에 앞서 '사람은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이 문제를 논하려면 우리는 인간의 '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사람의 뇌는 무엇을 위해 진화했는지 알고 있는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지식을 쌓기 위해서? 자기 계발을 통해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런 생각들은 부차적이거나 결과론적인 요소일 뿐이다.

  뇌는 신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진화했다. 이것은 인간을 떠나 포유류, 파충류 등 뇌를 가진 모든 생물에 적용이 되는 진화의 결과이다. 뇌를 중심으로 호르몬을 이용한 체온조절, 에너지 공급·소비 등의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감각정보를 수집하여 외부의 상황에 맞게 판단(감정, 사고)하고 대응한다.

  신체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뇌를 가진 조상은 생존에서 도태되고 죽음에 처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뇌는 확실하고 통제된 상황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불확실하고 예측하기 어렵다면 신체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책정하기 매우 어렵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뇌의 불안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불확실한 상황을 해결하면 된다.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시각화''통제감 경험'이다.


1) 시각화


  우리의 뇌는 눈, 귀, 코가 없다. 어두운 골통 속에서 눈, 귀, 코, 피부가 알려주는 정보를 받아들일 뿐이다. 즉, 뇌가 안정되게 할 수 있는 수단은 오감을 통해 확실한 정보를 주는 것뿐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신체 건강한 정상인이라면 오감이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데 문제가 없는데 왜 그토록 걱정·불안이 많을까? 그것은 뇌가 단편적이고 불분명한 정보들을 너무 많이 받기 때문이다. 친구가 당신에게 '야 죽었데'라고 하면 어떤 느낌인가? '누굴 말하는 거야? 말을 똑바로 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뇌도 마찬가지이다. 어두컴컴한 골방에 혼자 앉아있는데 자꾸 누군가 처음보는 정보를 툭툭 던진다. 그런데 정보가 완전하지 않다. 뚝뚝 끊긴 정보들이 계속 들어온다. 환장할 노릇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해석하기 위해 뇌는 자신의 뇌를 싸맨다.

  최근에 수능이 끝났으니, 수험생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해보겠다. '수능은 11월 00일', '대학 좋은데 못 가면 성공하기 힘들다', '이번 수능은 불수능이라더라' 같은 정보들이 들어온다. '6월 모의평가'에서 4, 5등급이 가득했다.

  수능을 못봐도 상관없으면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수능이 중요했다. '사관학교'를 목표로 했기에. 말 그대로 목표였지 나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6월 모평 4, 5등급', '수능 11월 00일', '불수능', '성공'이라는 단편적인 정보들은 나에게 엄청난 걱정과 불안을 느끼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각화'하는 것이 불안감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노트를 준비하자.

1. 걱정을 적어본다.
- 수능이 망하면 어떡하지?

2. 그게 왜 걱정이야?
- 부모님의 기대, 인생의 성공에서 멀어짐, 장교가 될 수 없음, 실패자란 낙인
2-1) 부모님이 실망하실까?
- 그럴 것이다. 학생시절 내내 성적이 좋다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바닥을 치고 있으니.
2-2) 진짜 인생에서 실패할까?
-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까? 나는 공부밖에 안해봤으니까.
2-3) 장교가 되는 길이 사관학교 밖에 없을까?
- ROTC, OCS등의 다른 길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최고가 되고 싶다.
2-4) 사람들이 실패자라고 생각할까?
- 내세울게 공부밖에 없었는데 그 마저도 변변치 않아졌다. 그리고 인생의 첫 관문이라는 수능에서 떨어졌으니 실패자이지 않을까

3.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경험이 무엇일까?
- 부모님의 죽음이지 않을까

4. 수능의 실패는 그 경험에 비해 최악일까?
-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픈 경험일 것이다.

5. 그렇게 수능에 실패하는게 두렵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 아마 성적을 획기적으로 올리는 것은 어렵겠지만 맞출 수 있는 것을 확실히 맞추고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5-1) 맞출 수 있는 것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그저 문제만 풀고 왜 틀렸는지 분석을 안 했다. 왜 틀렸는지에 대한 분석에 집중함으로써 어이없게 틀리는 것을 최대한 예방해야지.
5-2) 수능 당일에 100% 실력을 발휘하는 방법은?
- 시험과 동일한 시간대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잠들지 않고 깨어있기. 수험과 비슷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연습 등을 해보기

6. 이렇게 해도 수능에 실패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당장은 다른 대학을 가거나, 재수를 하는 방법 두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6-1) 다른 대학을 가도 괜찮은가?
- 왠지 평생 후회를 하며 살 것 같다.
6-2) 재수해서 사관학교에 갈 수 있을까?
-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사관학교는 3수까지의 기회가 부여되니 적어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미련이 남을 것이다.


  위에 방식대로 한다고 수능에 성공하는 것은 장담하지 못하지만, 불안과 감정을 통제하는데 용이하다.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최악의 결과가 미리 예상하고 받아들일 정도인지 등 상황을 구체화시키는 것으로 뇌는 안정감을 느낀다.

  위의 예시는 지금 시점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생각하며 적은 것이다. 나의 수험생 시절은 걱정만 가득했고 수능은 실패했다. 그러나 나의 군생활, 최근 전역을 준비하며 솟아나던 걱정들을 실제로 이렇게 다스렸고 지금도 꽤 유용하게 쓰고 있다.


2) 통제감 경험


  걱정·불안을 다스리는 두 번째 방법으로 '통제감'을 느끼는 것에 있다. 꼭 걱정거리와 관련되어 통제감을 느낄 필요 없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하루, 작업, 일 등에 대해서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장교생활을 해오면서 자주 사용하던 방법 중 하나이다. 전역 전 마지막 근무지 역시 바쁘고 힘들었다. 육군·공군, 해양경찰·수산청·어업 관리국 등의 타기관, 미 해군과 같이 하는 합동훈련을 집행하기 위해 직접 훈련을 계획하고 일일이 협조하는 직책이었다.

  협조하고 조율하고 전화를 받다 보면 퇴근시간이 되었다.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내 일을 할 수 있었고 야근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매일 쏟아지는 정보들에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훈련이 도래하기 전에 계획을 완벽히 작성해야 하는데 하루하루 상황에 끌려가고 급하게 처리하는 느낌은 불안감을 키웠다. 그럴 때 작업하던 컴퓨터에 '스티커 메모'를 켰다. 여러 스티커 메모를 켜놓고 '훈련을 준비하는 큰 절차', '현재 단계', '확인해야 할 사항', '미해결 사항', '오늘 할 일' 등을 나누었다.

  전화를 하면서 결정된 정보들을 메모에 정리하고, 처리한 일은 지우지 않고 '삭선 표시' 등 간단한 시각화 작업을 하면서 '무엇을 해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기 시작했다.

  일을 하려면 당연한 것을 대단한 것처럼 말해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통제감'을 경험하는 것은 불안을 통제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꼭 일·작업과 관련되지 않더라도 통제감을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자신에게 하루에 달성할 가벼운 과제를 규칙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통제감을 얻을 수도 있다. 특히, 저녁식사 후 1시간 걷기 등 특정 시간·가벼운 신체활동과 관련된 것일수록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성취감을 달성하기 쉬워진다. 


  다시 본제로 돌아와서 '사람이 바뀔 수 있는가?'와 위의 내용이 어떤 관련이 있을까? 사람에게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확신할 수 없지만, 사람의 행동이라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 뇌는 다양한 감각에서 들어온 정보를 토대로 감정을 만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사람은 보이는 데로 생각하고 믿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상적이고 심오한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유감이다. 공포영화에서 본 귀신이 생각나면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 시야를 차단함으로써 안도감을 느끼는 아이의 모습이 인간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행동은 변화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태어나고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개발된다. 그렇게 성인이 된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주변을 가득 채워놓는다. 친구와 축구, 수다 떨기, 유튜브 보기, 게임 등 자신이 즐겨보고 즐겨 찾는 것들을 생각하면 된다.

  매일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정보를 얻고 그것을 좋아하면 더욱 그런 것들로 채워 넣는다. 자신의 삶에 가득 찬 것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그것으로 판단을 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행동한다.

  인간의 행동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눈에 보이지 않는가? 자신이 즐겨보는 것,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면 된다. 자신을 바꾸겠다고 정면승부하는 것은 패배가 보장된 싸움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에게 변화를 주고 싶다면 자신이 매일 보는 것, 들리는 것을 바꾸어 보는 것이 어떨가?

  하지만 이 변화는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말했듯이 인간의 뇌는 예측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선호한다. 전혀 모르는 세상을 향해 용감히 발걸음을 옮긴 조상 중 대부분은 짐승의 밥이 되거나 독초를 먹고 죽는 등 생존율이 낮았을 것이다.

  생존이 보장된 안전한 장소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중요했고, 우리는 그렇게 행동해서 살아남은 조상 인간들의 후손이다. 낯선 장소, 직업, 학문, 사람에 대한 거부감은 당연한 감정이다. 수백만 년 진화한 뇌에게 '환경의 변화'는 '생존의 위협'이기 때문에.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뇌에게 '변화는 위험하지 않다'라는 재인식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재인식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시각화', '통제감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행동은 자신의 환경을 바꾸는 것으로 변화가 가능하며,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은 '시각화', '통제감'을 경험함으로써 재인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이 보인다.


「사람은 고쳐서 쓸 수 있는가?」

  환경의 변화, 통제감 형성, 시각화 같은 과정의 주체가 누구인가? 본인 자신이다. '고쳐서 쓴다'는 표현은 내가 타인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바꾸고자 하는 대상의 환경, 감정을 타인이 만들어주기는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람은 고쳐 쓴다'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허무한 결말을 내기에는 글을 적은 내 시간이 아깝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라는 말이 왜 나왔을까?

 

 

'일을 맡기려고 사람을 뽑긴 했는데 하는 폼이 영 아니다. 새로 뽑기도 어려우니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교육을 하는데, 별로 의지도 없고 몇 개월이 지나도 그대로에 발전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자신이 하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본업을 소홀히 한다'

'하~ ㅅㅂ 이래서 사람을 잘 뽑아야 해.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나의 짧은 사회생활에서 이런 경우에 많이 나온 말이었다. 고용이 된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보면,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경험,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좋다고 해서 들어가긴 했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재미도 없고, 해본 적 없는 일을 시키면서 제대로 안 한다고 뭐라 하니 일하기 더 싫다.

  항상 막내 입장에서 일해온 나로서도 후자에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농촌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언제 밭 갈고, 소는 누가 키울지를 수 십 년 하는 것으로 평생을 먹고사는 사회가 아니다. 다양한 업무환경과 필요지식, 생활방식이 존재한다. 물론, 그 다양성을 모두 경험하고 모든 것을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할 때 적응을 잘하는 것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히 알고 있다. 다양한 사회이기에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환경이 산산조각 나면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찾으면 되겠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 생존하기 수월하려면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 환경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용자의 입장에서도 관련 전문가를 뽑으면 최고지만, 그런 기회가 적다면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 우선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환경에 잘 적응하고 바뀌는 사람의 자질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경험과 책에서 얻은 지식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환경의 변화에 능통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자주 보는지? 누구랑 자주 얘기하는지? 요즘 내 감정은 어떤지? 즐거울 때 내가 하는 행동이 있는지? 슬플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이런 질문들은 자신이 제삼자가 되어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인지하기 어렵다.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삶을 통제한다는 감각을 느끼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의 변화'를 위한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는 건방진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행복일 수도 있고, 부와 명예 또는 내가 생각지 못한 다른 무언가 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자신에게도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신을 잘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중구난방에 길고 지루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위 글은 그저 1년 간 읽은 책들을 휘발시키기 안타까워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저만의 방식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과학을 참고했지만 저의 사견이 많이 들어가면서 유사과학이 되어 버렸으니 주장의 근간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서적을 읽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참고 :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호모데우스, 사피엔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었는가?, 클루지, 인스타브레인, 욕망의 진화, 역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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