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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메타인지] 당신이 게으르고 대충하고 넘겨짚는 한 가지 이유 (from. 생각에 관한 생각)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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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메타인지] 당신이 게으르고 대충하고 넘겨짚는 한 가지 이유 (from. 생각에 관한 생각) [1]

C빌런 2022. 8. 2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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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해군 장교로서 마지막 1년을 보내면서 무수히 많은 훈련계획 보고서와 전문을 만들었다. 훈련을 준비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지만 그중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보고서를 상관의 입맛에 맞게 작성하는 것이었다. 내 위로 3명의 상관을 만족시키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란 여간 짜증 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지루하고도 신경을 갉아내리는 싸움을 통해서 몇 가지 보고서의 작성에 대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어려운 말 쓰지말 것', '그림과 도형, 표를 적극 활용할 것'. 이 두 가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지만, 이론적인 근거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감정으로 생각하는 동물」

  사람은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관이 '뇌'이다. '뇌'는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결정할 때 '경험'과 '학습'에 대한 '기억'을 근거 삼아 행동한다. 그리고 '기억'은 그 순간 느낀 '감정'을 토대로 형성된다. 

 

  기억의 형성과정에서 '감정'은 재료가 된다. 즉, 인간은 생각을 하는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이다. 인간의 모든 판단에는 '감정'이 들어있다. 진한 이과감성이 묻어나는 과학자들까지도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뇌는 매일 무수히 많은 판단을 실행하고 결정한다. 

 

  우리가 멍하게 누워있거나, 하염없이 걷는 그 순간에도 뇌는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분명 나는 멍 때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뇌는 바쁘다고 하니 이상하게도 들릴만하다. 


「자동화 노예와 게으른 상관」 

  뇌는 두가지의 시스템이 있다. 책에서 편의상 '시스템 1', '시스템 2'라고 소개를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시스템 1'이라 불리는 것은 '감정'에 대해 주관하는 '변연계'를 뜻하며, '시스템 2'는 '생각'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을 가리킨다. 

 

  역시 변연계, 전전두피질보다 시스템1, 시스템 2가 더 직관적이니 이렇게 사용할 것이다. 뇌의 판단은 이 '시스템 1'의 일에 대해서 '시스템 2'가 관여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시스템1'은 한 마디로 말하면 '자동화 노예'이다. 주변 환경에서 시시각각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고 그것을 토대로 감정을 느끼며 자동적 반사를 하거나 '시스템 2'에 준비한 해결책을 보고하며 '이렇게 실행할까요?'라고 보고한다. 

 

  '시스템2''게으른 상관'이다. '시스템 1'이 물어보는 것들의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해왔던 보고들이기에 '이렇게 해왔던 것들이니까'하고 그냥 PASS 시킨다. 대부분이 그렇다. 내 입장에서는 괘씸한 놈이다. 이 놈을 어떻게 일하게 시킬까?

   답은 '시스템2'를 불편하게 만들면 된다. 불편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낯선 감정. 처음 보는 것. 어려운 것. 난해한 것. 이런 것들이 불편한 것이다. '시스템 2'가 처음 보거나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보고를 받는 순간 '시스템 2'의 이마에 핏줄이 솟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시스템2'는 보고서를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며 정독한다. 그리고 어려운 것을 이해하던가 그냥 포기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친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개념들로 대체해서 넘겨짚기를 한다. 그리고 '시스템1'의 보고에 대해 다른 판단을 제시하며 행동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 과정이 보고서를 검토하는 상관과 나의 상호작용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훈련계획에도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하는 훈련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추가된 개념이나 훈련을 한 지 너무 오래되어 자료가 없는 훈련들이 있다. 

 

  전자의 훈련은 상관도 대충 줄 간격이나 오타를 보는 수준으로 검토하지만, 후자의 훈련을 계획할 때는 머리가 아프다. 보고를 받는 상관을 이해시키기 위해 훈련에 대해 더 자세하고 꼼꼼하게 공부해야 하고, 상관이 받아들이는 수준에 따라 보고서를 얼마나 뒤집을지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잘만든 보고서란 이 책을 근거로 이야기하면 상관의 시스템2가 인지하지 못하도록 만든 보고서를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개인의 문제로 축소해보자. 우리의 판단은 '시스템 2'가 편안하냐 불편하냐에 따라 바뀐다고 했다. 이것을 '인지적 편안함', '인지적 압박감'이라는 용어로 말한다. 진화하다보니 뇌는 기본적으로 '인지적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었다.

 

   뇌는 우리가 하루에 소모하는 에너지 중 약 20%가량을 소모한다. 단일기관으로서 20%를 혼자 쓴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 소비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던 조상 인류의 환경에서 신체의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는 방향은 생존에 매우 불리했을 것이다. 뇌 역시 되도록 기본 할당치 만 사용하고 특별한 경우에만 에너지를 더 쓰는 방향으로 진화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누워서 침대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생각없이 유튜브 보며 깔깔대고, 정치병 걸린 사람이라 판단하면 대화하기를 꺼리고,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고 하면 원래 저런 새끼들이니까 하는 이유도 모두 '인지적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진화한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이렇게 진화했기에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환경은 변했다. 우리의 환경은 언제든 먹을 수 있는 풍족한 환경이며, 그럴 의지만 있다면 어디서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독특한 환경으로 변해버렸다. 에너지의 보충이 자유롭고, 결정한 행동에 사용될 에너지의 소비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어서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계발서를 읽어본 적이 있다. 그들이 성공한 분야는 모두 달랐고 성공한 과정도 달랐기에 그들의 공통점이 궁금했다. 이 책을 통해서 공통점 중 하나를 찾은 듯하다. 그들은 풍요로운 이런 환경을 인지하고 선택을 할 때마다 '인지적 압박'을 느끼며 '시스템2'를 활용해 생각의 질을 높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아직 갈길이 정말 멀구나 싶다. 해야할 일에 준비가 안됐다며 뒤로 미루는 선택을 줄여야겠다. 반성해야지.

 

  글을 읽어주신 분들은 '시스템2'를 적극 활용할 정도로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하며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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