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사색가 C Villain
(10) '실제'와 '허구'로 가득한 인간의 삶 (from. 호모데우스) 본문
'사피엔스'라는 책을 읽고 저자 '유발 하라리'의 인류에 대한 고찰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역사학자이면서 생물학, 심리학 등에 조예가 깊은 그가 풀어낸 인간에 대한 통찰은 매력적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두 번째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구라를 만들고 믿을 줄 아는 동물」
생물학적 명칭 '호모 사피엔스'. 즉, (현대)인간이라는 생물이 지구에서 가장 번성하고 다른 동물을 지배하는 최상위 종으로 성공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불의 사용? 지능? 직립 보행? 언어능력? 이런 능력의 발견은 도움이 되었지만 부차적인 요소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상상을 할 줄 알았고, 그 허구를 믿는 동물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공유하는 믿음은 난생처음 본 '사피엔스'들 간에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허구에 대한 믿음이 그들을 묶어주는 접착제가 된 것이다.
지구상에서 볼 수 없었던 이 동물의 유기적인 협력은 수 백, 수 천, 수 만명이 모여사는 공동체를 이루게 했다. 당연히 이런 대규모 집단을 이길 수 있는 인간 외 동물은 없었고, 인류는 지구의 지배자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과 허구'는 무엇을 뜻할까? 중세시대를 생각하니 왠지 '종교'가 떠오르지만, 종교는 그 일부이다. '국가', '법', '돈, '평등', '자유', '민주주의', '주식', '직업', '회사', '알바', '전세', '월세' 등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이 '상상과 허구'로 이루어져 있다.
'상상과 허구'라고 말하니 공감이 안될 수 있다. 전문가의 용어를 빌리자면 '사회적 현실'이라고 한다. 위에서 열거한 단어 중 만지거나 볼 수 있는 실체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지키도록 강요되는 강력한 족쇄가 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허구에 영향을 받는다. 아니,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허구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용주를 위한 일을 하고 정당한 임금을 받는다. 그렇게 서로 인정하고 합의한 '사회적 계약관계'라는 허구를 믿기에 일을 한다.
이런 인간의 삶에는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허구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사후의 영생을 위해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생활이 삶의 이유가 된다. 또다른 이들은 최근에 시작한 게임에서 랭커를 찍어 만족을 느끼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될 수 있다. 어떤 부모님은 자식이 판·검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을 사는 삶을 꿈꿀 수 있다.
그리고 인간들 중에는 생존에 중요하지 않은 허구들을 이용해 부와 명예, 권력, 인기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수이지만, 다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보다 허구가 가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수록 사회는 이런 소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쉬워진다.
「면죄부와 십자군」
중세시대에 번성한 '카톨릭'은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맹신하는 종교이다. 세계의 탄생과 인류의 시작, 삶의 불행과 행복, 너가 농노인 이유, 죄지은 자는 천국에 못 가는 이유 등 모든 것은 신의 의지 아래 정해진 것이었으며, 그것은 상식이었다.
왜냐하면 유일한 지성인인 동네 주교님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렇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통없는 사후세계와 구원을 믿었고, 간절히 바랐다.
구원받는 삶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알던 '카톨릭'은 죄를 사면해주는 증서를 팔아 돈을 벌었다. 그리고 이교도를 죽이면 천국에 가는 삶이 보장된다는 선전을 통해 '십자군'을 일으킨다.
많은 카톨릭 교인들은 구원을 위해 예루살렘을 탈환했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악한 이슬람교도를 죽였고 자신들이 죽기도 했다.
카톨릭과 교황은 왜 십자군을 일으켰는가? 오늘날에 신성한 예루살렘을 사악한 무슬림으로부터 해방하려 했다는 주장을 믿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자. 종교는 믿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들의 헌신이 강력할수록 종교지도자들의 부와 권위가 커진다.
유럽에는 카톨릭 교도들이 많이 살았다. 그런 가톨릭 교도들에게 사악한 무슬림의 도시로 전락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한 교황이라는 타이틀은 교인들이 진심으로 고개 숙이게 만들 것이다. 실제로 성공했고 무소불위였던 교황의 힘은 절대적이 된다.
그렇다면 십자군에 참가한 민중들은 순수한 종교적 열정으로 참가했을까?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상상해보자. 작위와 토지가 필요하지만 막막함을 느끼는 힘 없는 영주 또는 출세길 막힌 영주의 서자, 기사들. 나아질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 고통받는 사람들.
그들에게 구원이 보장된 예루살렘이라는 새로운 기회와 탈출구는 매력적이다. 심지어 십자군 참전 의사를 밝히면 동네의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영웅이 된다. '십자군 원정'과 '면죄부'는 사회적 현실을 꿰뚫어 보고 잘 이용한 카톨릭과 교황의 성공적인 정책이었다.
십자군 배경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주인공이 '예루살렘은 무슨 의미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살라딘'의 대답
「인터넷망 사용료 문제」
과거 카톨릭의 부정함에 대해서 대다수 사람들은 쉽게 동의한다. 현대로 돌아와서 얘기하보자. 최근 '인터넷 서비스'를 둘러싼 이슈가 있다.
우리나라 ISP(인터넷망 서비스 공급자 / Internet Service Provider) 대표들인 SKT, KT 같은 국내 통신사들과 해외의 CP(콘텐츠 공급자 / Contents Provider)인 넷플릭스, 구글의 인터넷망 비용 부담에 대한 싸움이다.
[인터넷망 사용료 법안 제정 요지]
해외 CP(넷플릭스, 구글)들의 국내 인터넷망 사용량(트래픽)이 증가함으로서 국내 ISP들의 서버 증축 및 유지, 관리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 비용을 해외 CP들도 분담하도록 사용량에 따른 비용(인터넷망 사용료)을 받는 법안 제정을 둘러싼 세기의 싸움
자세한 내용들은 대형 유튜버들이 제작한 영상들을 보시거나 기사를 직접 확인하시면 좋을 것이다. 무지한 나로서는 능력이 안돼기에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다만, 책의 저자는 중세시대의 '면죄부와 십자군'처럼 허구가 우세한 사회와 그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개인이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실제'와 '허구'에 대해 인지하고 구분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는 '고통을 느끼는가?'이다. 십자군에 참여한 민중과 이슬람교도들은 피를 흘리고 죽었다. 그것은 실제이다. 십자군이 패했다고 해서 카톨릭이라는 종교가 고통받지는 않는다.
저자의 논리대로 생각하자면 ISP(국내 통신사), CP(구글, 넷플릭스)는 허구이다. 그들이 싸움에서 이기고 승리한다해서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실제'는 무엇일까?
CP (구글, 넷플릭스 등)와 옹호자들의 주장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인터넷 콘텐츠 제작자 및 플랫폼에 대해서 추가요금이 붙는다. 스트리머, 유튜브 직종자들은 그들이 제작한 콘텐츠 영상에 더해 사람들이 그 영상을 찾아볼 때마다 그에 비례한 추가 요금이 부과될 것이다. 비용을 감수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스트리머, 유튜버를 제외한 대부분은 실업자가 된다.
구글과 넷플릭스, 기타 인터넷 방송 플랫폼 제공자들은 기업이다.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한국에 제공하는 서비스 부담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이 인터넷망을 덜 사용하게끔 정책을 제한할 것이다. 이는 한국의 서비스 이용자들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될 수밖에 없다.
ISP (SKT, KT 등 국내 통신사)와 옹호자들의 주장
구글과 넷플릭스 같은 해외의 대형 CP들의 국내 인터넷망 사용량이 절반을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고 유지하기 위해 ISP의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 시장의 모든 사업자들은 공정한 수익의 기회를 가져야 하지만 해외 CP들은 국내 ISP의 부담에 편승한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내가 확인한 관련자들의 주장을 정리한 내용이다. 둘 다 틀린말은 아닌 듯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나의 입장에서 '실제'는 CP 측의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실업과 서비스 저하의 피해자는 온전히 나와 같은 평범한 개인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실제'를 파악하고 이용하는 CP의 주장은 용의주도하다. 그런데, 의문점이 생긴다. 단순한 '법적 분쟁'이었던 문제를 갑자기 '법안 제정'을 통해 ISP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많은 국회의원들의 지지이다.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 제정이라고 주장은 '허구'라고 생각하고, '국회의원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을까?'란 궁금증이 생겼다. 그에 대해서는 혼자만의 추측으로 남겨두려 한다. 다만, 최근 '실제'에 자극받은 여론이 '법률 반대'를 외치면서 국회의원 법안 동의자들은 하나 둘 도망가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주저리주저리 적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요약]
1. 인간은 '허구(상상)'을 믿는 동물이다.
2. 인간은 '허구'를 통해 '사회적 현실(자유, 평등, 국가, 법, 직장, 월세 등)'을 만들었다.
3. '허구'가 없는 인간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허구'가 목적이 된 인간의 삶은 고통스럽다.
4. '허구'와 '실제'를 구분할 줄 알고, '허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알려고 노력해야 개인의 피해가 최소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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